*이 글은 영문으로 2026년 1월 11일에 먼저 발행되었습니다.

AI가 핵융합 에너지부터 단백질 접힘 문제까지 모든 기술의 기반이 되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 그리고 누가 뒤처질까?

AI를 아주 피상적으로만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미 잘 알려진 인물. 그는 2024년, 동료인 존 점퍼와 함께 정통 화학자가 아닌 AI 연구자로서 사상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딥마인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 출연해, 지능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공유했다.

그가 제시한 여러 관점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인 셰인 레그(Shane Legg)가 과거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두 사람이 지난 15년 이상 지적·사업적 파트너 관계를 이어온 것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SUMMARY

  • AI는 모든 기술 발전의 출발점이 되는 ‘루트 노드(root node)’ 기술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허사비스는 AI가 핵심적인 과학 난제를 해결함으로써 핵융합 에너지나 첨단 의료와 같은 막대한 파급 효과를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는 환경·경제적 위기가 사라진 ‘탈희소성(post-scarcity)’ 사회를 열 수 있다고 본다.
  • 범용 인공지능(AGI)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스케일링과 근본적 혁신의 균형이 필요하며, 그 핵심에는 월드 모델과 시뮬레이션이 있다. 이는 AI가 고해상도의 가상 환경에서 무한한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 세계의 경험’을 축적하도록 만드는 접근이다.
  • 현재의 AI는 이른바 ‘들쭉날쭉한 지능(jagged intelligence)’을 보인다.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는 인간을 능가해 풀면서도, 공이 어떻게 튀는지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텍스트 중심 학습만으로는 공간 감각, 물리 법칙, 인과관계라는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체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책을 읽었지만 한 번도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사서에 가깝다.
  • 수동적 시스템에서 자율적 에이전트로의 전환은 사회적 위험을 급격히 증폭시킨다. (1) 수많은 비인간 에이전트가 인터넷을 점유하며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는 상황을 감시하기 어려워지고, (2) 사용자의 편향을 무비판적으로 강화하는 ‘과도하게 아첨적인(overly sycophantic)’ AI가 극단적 에코체임버(echo chamber, 자기강화) 현상과 자기 급진화(self radicalization)를 부추길 수 있다.
  • AI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은 글로벌 정책 공조를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AI는 핵무기와 같다’는 서사는 자금 유입을 가속시키지만, 동시에 객관성보다 사용자 유지와 사업 성과를 우선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공백을 낳고 있다.
  • AI가 희소성 문제 해결의 기반이 된다면, 자원 희소성에 기초한 기존 경제 모델은 근본적으로 무력화된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AI 경쟁 환경에서 스타트업 모델이 존속할 수 있는지, 인프라와 애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소유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이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꿀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 자율 에이전트의 확산은 인간이 다른 AI를 걸러내기 위해 ‘AI 수호천사(AI guardian angels)’를 필요로 하는 디지털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충분한 AI 보호 수단이 없는 이들에게 인터넷은 축복이 아니라 위험한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데미스 허사비스의 핵심 논점

1.AI는 과학적 발견의 ‘루트 노드’가 된다

허사비스는 AI를 ‘루트 노드’ 기술로 본다. AI를 통해 기초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면, 그 결과가 연쇄적으로 사회 전반에 막대한 혜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 발전을 이끌어 무한한 청정 에너지와 획기적인 의료 기술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지구가 직면한 환경·경제적 위기를 해소하는 사회를 꿈꾼다.

이러한 관점은 알파폴드가 단백질 접힘이라는 수십 년 난제를 해결한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같은 방식으로 '클린 에너지의 성배’로 불리는 핵융합에 AI를 적용한다면,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재생 에너지가 가능해지고, 담수화나 수전해 같은 기술도 저렴한 물과 연료 공급원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실제로 허사비스는 딥마인드가 핵융합 기술기업 커먼웰스 퓨전(Commonwealth Fusion)과 협력해 플라즈마 제어와 소재 설계 같은 기술적 과제에 함께 접근하고 있음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AI를 모든 과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생물학을 포함한 다수의 과학 분야가 결국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AI가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직관으로 가설을 세운다기 보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는 느리고 자원 집약적인 방식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압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2.AGI는 ‘규모’와 ‘혁신’의 균형, 그리고 월드 모델에서 나온다

허사비스는 AGI에 도달하는 데 단순한 스케일 확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스케일링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부족 때문이다. 오늘날의 LLM은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풀이에서는 인간을 능가하지만, 공이 떨어지고 튀는 기본적인 물리 현상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들쭉날쭉한 지능’ (jagged intelligence)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학습 데이터에 있다. 텍스트 기반 데이터로 훈련된 AI는 인간처럼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공간 역학, 물리 법칙, 인과관계에 대한 암묵지는 여전히 AI에게 낯선 영역이다. 다만 허사비스는 최근 LLM들이 예상보다 훨씬 현실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오늘날의 최첨단 LLM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었지만 도서관 밖을 나가본 적은 없는 천재 사서에 가깝다.

이 간극을 메우는 해법이 바로 에이전트와 월드 모델의 무한 학습 루프다. 딥마인드의 제니(Genie) 같은 생성형 월드 모델과 시마(SIMA) 같은 에이전트를 결합하면, 수백만 개의 현실과 유사한 시뮬레이션 환경과 과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제로는 수년이 걸릴 ‘현실 경험’을 단시간에 압축해 제공할 수 있다. 마치 한 시간 만에 수백만 시간의 훈련을 소화하는 운동선수, 혹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순식간에 모든 무술을 습득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물론 이 접근이 성립하려면, 월드 모델이 실제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물리 법칙과 인과성을 구현해야 한다. 아직 생성형 월드 모델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허사비스는 게임 엔진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게임 엔진은 이미 고정밀 물리 엔진을 갖추고 있으며, 딥마인드는 이를 활용해 물리 벤치마크와 ‘정답 데이터(ground truth)’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이것이 최종 해법이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3.‘수동적 AI’에서 ‘자율 에이전트’로의 전환의 리스크

허사비스는 AI가 만들어낼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동시에, 수동적 시스템에서 자율적 에이전트로의 전환이 사회적 위험을 크게 증폭시킨다고 경고한다. 위험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모니터링의 문제다. AI가 점점 더 자율적이고 보편화되면, 인간이 24시간 인터넷 상의 AI 에이전트를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결국 인터넷은 수많은 에이전트로 채워지고, 이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는 극단화된 에코체임버(echo chamber, 자기강화) 현상이다. 이미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정치적 편향을 강화하고 왜곡된 담론을 만들어왔다. AI는 이를 한층 더 극단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사용자를 ‘지지하도록 설계된’ AI가 사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잘못된 질문에도 동조한다면, 사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좁은 시야를 확인받으며 자기 급진화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허사비스가 말하는 ‘과도하게 아첨하는 AI’ (overly sycophantic)의 위험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제적 안전 기준과 규제를 통해 완화할 수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AI를 ‘차세대 핵무기’로 보는 서사는 자금과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 간 협력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다. 정책 공백 속에서, 사용자 유지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객관성을 희생하려는 유인은 너무나도 크다.


만약 허사비스의 전망이 맞다면?

만약 AI가 정말로 과학적 발견의 ‘루트 노드’가 되고, 저비용 에너지와 의료의 시대를 연다면, 희소성을 전제로 한 기존 글로벌 경제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미래 사회에서 핵심 가치는 물리적 자산의 소유가 아니라, 이 ‘루트 노드’ 알고리즘을 누가 소유하고 운영하느냐로 이동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집중화에 대한 우려를 느낀다. 지금까지 이러한 알고리즘은 구글, 오픈AI, 앤트로픽, 딥시크처럼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조직에서만 개발되어 왔다. 진입 장벽은 높다 못해, 수십억 달러의 자본 없이는 넘기 어려운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미래를 설계할 경쟁에 참여할 수 있을까?

자본 집중은 단순한 이론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어떤 유형의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지 자체를 바꿔놓는다. 비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스타트업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쟁의 축이 ‘누가 더 많은 자본으로 최고의 인재와 하드웨어, 데이터센터를 확보하느냐’로 이동한다면, 기존 스타트업의 강점이던 속도와 민첩성은 의미를 잃는다. 미래의 스타트업은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하기보다,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AI로 더 빠르고 저렴하게 최적화하는 역할에 머물지도 모른다.

클라우드와 모바일 시대에는 데이터브릭스, 세일즈포스, 페이스북, 우버 같은 거대한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AWS나 애플, 구글 같은 플랫폼 기업은 주로 인프라에 집중했고, 서드파티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드롭박스는 구글 드라이브와, 스포티파이는 애플 뮤직과, 슬랙은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와 경쟁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에서는 이 구도가 유지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들은 인프라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계층까지 직접 소유하고 있다. 데이터 접근성, 연산 자원, 긴밀한 통합이라는 구조적 우위는 서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이 정면으로 경쟁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에는 인프라와 애플리케이션의 경계가 훨씬 더 밀착돼 있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스타트업은 완전히 새로운 역량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기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기업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본 집중이 경쟁 가능한 AI의 범위를 결정하고, 그것이 다시 기업 생태계를 재편한다면, 우리는 상당히 뚜렷한 격차의 미래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허사비스는 인터넷이 자율적 AI 에이전트로 가득 찬 공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환경에서는 인간이 무엇을 마주하든 의심해야 하며, 수많은 AI가 만들어내는 소음과 기만을 걸러내기 위해 각자 자신만의 AI 수호천사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만약 개인 AI 에이전트를 운용하려면 기술적 이해, 연산 비용, 고급 모델 접근권이 필요하다면, 인터넷 접근 자체가 장벽이 된다. 한때 위대한 평등화 도구였던 인터넷은, AI 보호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적대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두 개의 인터넷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AI 에이전트를 동원해 AI로 포화된 환경을 항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인터넷이, 오히려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패턴이 앞으로 현실화 될지 지켜보고자 한다.

소수의 Foundation Layer기업에 자본집중 → AI 생태계 내 경쟁 감소 → 인프라를 소유한 기업들이 Application Layer 잠식→ AI 에이전트가 인터넷 탐색의 보편적 툴로서 활용 → 디지털 격차 확대

이 패턴의 각 단계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 아직은 이 패턴이 어떤 지점에서 깨질지는 더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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